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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의 리더십
영국에서 두 번이나 수상을 지내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지금까지도 ‘가장 위대한 영국인 리더’로 불리는 사람, 윈스턴 처칠.
처칠은 부유한 정치가 가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8삭 동이로 태어나 몹시 병약하고, 왜소한 체격에 말 더듬증도 갖고 있었다. 학창 시절 성적은 거의 꼴찌였고, 사람들은 그를 열등아, 저능아로 불렀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군에 입대하여 혹독한 체력 훈련으로 신체적인 허약함을 이겨내고, 하루 다섯 시간이 넘는 독서를 통해 학창 시절 성적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해 냈으며, 혀 짧음과 무대공포증을 없애기 위해 길거리를 걸어 다닐 때에도 웅변 기술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결국,‘포기하지 말라’가 신조였던 그는 가장 치열한 전투인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나치의 위협 아래서도 영국을 지켜냈으며, 나아가‘가장 위대한 영국인이자 이 시대의리더’로 기록될 수 있었다.
지미 카터의 리더십
1976년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카터는, 취임 후 중동평화의 정착을 위해 힘썼으나, 1979년 이란인들의 테헤란 주재 미대사관 급습 사건과, 국내 경제정책 파탄 등이 겹쳐 발생함에 따라 1980년 말대선에서 공화당의 레이건에게 패했다.
대통령 재직 시절 하는 일마다 시비와 비난이 그칠 줄 몰랐고, 재선에 실패했을때 언론은 그를 패가망신한 소인배로 매도했으며, 국민들은 그가 미국의 대통령 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퇴임 후 카터는 기존 前 대통령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 건설 현장에서 청바지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땀을 뻘뻘 흘려 일하고, 개발도상국에 중요한 선거가 있으면 아무 권력도 없는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달려가서 공명선거 감시단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분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수단의 휴전협정, 아이티사태의 무혈해결, 보스니아 휴전 등을 이끌어내었다. 카터는 이처럼 수많은 국제분쟁을 아무런 권력도 없이 해결해 낸 것이다. 비록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는'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지만,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오늘날 미국인에게'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가 위대한 리더로 자리매김한 시기는 대통령시절이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서 봉사와 분쟁 해결에 힘쓰는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리더십이 지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리더십이란 사람의 관계에 있어 조직의 비전을 제시하고 개인의 비전을 다듬어 실현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와 구성원간의 상호작용의 과정입니다. 즉 사람을 이끌고, 키우고, 성장시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의 작업인 것이죠. 그래서 사람부터 시작된 모든 일에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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